웹소설/[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20화

울다미 2026. 5. 8. 17:08

교실에 들어서니 자기 자리에 아침이 놓여 있었다.
옆자리 짝이 복잡한 눈빛으로 성하진을 봤다.

"차남현이 가져다줬어. 나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잖아."

성하진이 아무렇지 않게 앉았다.
차남현은 학교에서 유명한 편이었다.

성적, 외모, 극단적으로 어려운 형편,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런 사람이 요즘 매일 성하진한테 아침을 가져다놨다.

그것도 자기는 간단한 것만 먹으면서, 성하진 것은 매일 달랐다.
돈도 돈이지만, 신경을 쓴다는 게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뭐 있어?"

"있긴 있냐고! 얼른 털어놔."

성하진이 입을 열었다.

"나사 빠진"

"한 번만 더 그 말 하면 나 진짜야!"

성하진이 웃으며 아침을 집어들었다.

---

9반 교실.
차남현이 일찍 나와 문제를 풀고 있었다.

방과 후에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오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습관이었다.
집중하고 있는데 비스듬히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태윤이 진심인 것 같던데. 성하진 볼 때 눈빛이 달라졌어."

"그러니까. 예전엔 성하진이 매달려도 쳐다도 안 보더니, 이제 와서. 이게 바로 후회공 시나리오 아니야?"

차남현의 펜이 멈췄다.
면색이 굳었다.

"성하진이 눈을 하늘까지 굴렸는데도 귀엽다고 했대. 저 사람 필터가 얼마나 두꺼운지..."

두 사람이 그때서야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반에서 제일 말이 없는 학생이 돌아봐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 다 굳었다.
차남현이 조용히 말했다.

"아침 많이 먹었어?"

"아, 아니, 오늘 못 먹었는데……"

"그러면 입 좀 아껴. 나중에 쓸 데 있을 거니까."

두 사람이 어안이 벙벙한 채 있었다.
차남현이 돌아앉아 다시 펜을 들었다.

그러다 멈췄다.
핸드폰을 꺼내 성하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차남현: 점심 같이 먹을 수 있어요?]

잠시 후 답이 왔다.

[성하진: 나사 빠진 애들이랑 뚝배기 먹기로 했어요ㅠ 저녁에요?]

[차남현: 방과 후에 아르바이트 있어요.]

[성하진: 주소 알려줘요. 찾아갈게.]

차남현이 잠깐 멈췄다가 주소를 보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차남현: 거기 매실 에이드 잘 해요. 오면 만들어줄게요.]

성하진이 읽은 걸 확인하고 차남현이 핸드폰을 내려놨다.
가라앉았던 얼굴이 조금 풀렸다.

---

시스템이 조용히 알려왔다.

[차남현 흑화 수치: 10.]

성하진은 아침을 씹으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레슬리만 버텨준다면.

---

방과 후, 나사 빠진 애들이 성하진을 끌고 특성화 고등학교 앞으로 갔다.
거기 킹카가 나온다고 했다.

보라색 머리카락에 귀걸이를 단 남학생이 나왔다.
옆에서 탄성이 터졌다.

성하진은 한 번 보고 고개를 돌렸다.
조시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안 멋있어?"

"차남현이 훨씬 낫던데."

애들이 일제히 성하진을 봤다.
성하진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왜요, 틀린 말이잖아?"

조시우가 천천히 말했다.

"너 예전에 차남현한테……"

성하진이 재빨리 조시우 입을 막았다.

"쉿!"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차남현은 없었다. 아르바이트 간 뒤였다.

"도 아닌 사람끼리는 얘기가 안 돼. 나 먼저 갈게."

조시우가 불렀다.

"어디 가?"

성하진이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대장 마중 나가."

애들이 멍하니 서로 얼굴을 봤다.

---

카페 문을 밀고 들어서니 차남현이 카운터 안에서 포위당하고 있었다.
유니폼을 입은 차남현은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만화 캐릭터 같았다.

마침 여학생 네다섯 명이 카운터에 기대어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오빠, 뭐 추천해줘요."

"어떤 거 제일 맛있어요?"

"같이 사진 찍어요."

차남현이 메뉴를 짚어가며 맛과 특징을 설명했다.
정중하고 차가웠다.

여학생들이 조금 실망한 기색으로 음료를 주문하고 테이블로 이동했다.
그래도 카운터 쪽을 자꾸 돌아봤다.

성하진이 구석 자리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었다.
차남현이 고개를 들다가 성하진과 눈이 마주쳤다.

눈빛이 한 번 밝아졌다. 입 모양으로 "잠깐"이라고 했다.
돌아서서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차남현이 카운터 밖으로 나와 성하진 앞에 컵을 내려놨다.

"매실 에이드에 치즈 얹었어요. 마셔봐요."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옆 테이블 여학생들 눈이 일제히 커졌다.
성하진이 그 시선을 즐기며 컵을 잡은 차남현 손가락을 일부러 살짝 쥐었다가 흔들었다.

"나랑은 이따가 같이 밥 먹어줄 거죠?"

차남현이 성하진을 보는 눈빛이 약간 무색했다.

"30분 뒤 퇴근이에요."

"기다릴게요."

차남현이 낮게 응 했다. 돌아가기 직전, 살짝 성하진 손가락을 되잡았다가 놨다.
여학생들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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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여학생들이 다시 카운터로 몰려갔다.

"오빠, 이따 같이 밥 먹어요."

차남현이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안 됩니다."

"팁 드릴게요."

"저희 매장은 팁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같이 나가줘요?"

차남현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어렵습니다."

"왜 쟤랑은 약속 잡아요?"

차남현이 성하진이 앉아 있는 쪽으로 시선을 한 번 줬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제 친구라서요."

여학생들이 얼어붙었다가 귀가 새빨개진 채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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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두 사람이 나란히 걸었다.
성하진이 웃으며 말했다.

"직접 카페 차리면 대박 날 것 같은데."

차남현이 말없이 성하진을 봤다.
성하진이 멈칫했다.

"농담이에요, 농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머리 위로 손이 왔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성하진이 돌아봤다.

"뭐야, 귀엽다고 놀렸더니 보복하는 거예요?"

차남현의 입꼬리가 조금 움직였다.
성하진이 어이없어 웃다가 앞으로 걸었다.

차남현이 근처 분식집으로 데려갔다.
국 한 그릇씩 먹었다. 따뜻하고 소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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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두 사람이 근처 작은 공원을 걸었다.

초입에 노인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저녁이 막 내려앉은 시간이었다. 바람이 부드러웠다.

성하진이 벤치에 자리를 잡아 끌고 앉았다.

"이런 하루가 계속되면 좋겠다."

눈을 감고 선율을 들으며 중얼거렸다.

차남현이 낮게 응 했다.

잠시 후 조용히 불렀다.

"성하진."

"응?"

눈을 뜨는 순간, 차남현이 가까이 있었다. 말없이 성하진을 보고 있었다.
눈빛에 긴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뭔가 무거운 것도.

차남현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
성하진이 멍하니 눈을 깜빡이자, 차남현이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맞췄다.

부드러웠다. 망설임이 있었지만 놓지 않으려는 것도 있었다.
성하진은 한 박자 굳었다가 정신을 차렸다.

*주도권을 이쪽에서 가져왔다.*

몸을 기울여 앞으로 나아갔다.

차남현이 그 움직임에 당황해 물러나며 숨을 몰아쉬었다.
눈빛에 당혹과 필사적인 자제가 뒤섞여 있었다.

어린 알파의 반응이었다.
성하진이 벤치에 등을 기대고 피식 웃었다.

차남현이 시선을 거두며 굳어 있다가, 그 눈이 다시 성하진 쪽으로 흘렀다.

---

별장에 돌아온 건 밤 아홉 시였다.
짐을 싸서 내일 이사 나가자고 마음먹은 참이었는데, 상혁이 또 와 있었다.

"바쁜 거 아니에요?"

의아하게 물었다.
상혁이 성하진을 바라봤다.

머릿속에는 조금 전 받은 사진이 있었다.
어두운 공원, 차남현이 성하진에게 입을 맞추는 장면.

상혁은 자기 안에서 뭔가가 냉정하게 움직이는 걸 느꼈다. 부인하거나 숨길 필요도 없었다.
원하는 것을 향해 가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그가 앞에 있던 태블릿을 밀었다.

"레슬리 상황 알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성하진이 다가가 태블릿을 들었다.

자료와 사진을 보면서 표정이 조금씩 굳었다.

레슬리가 위태로웠다. 예고를 받은 덕에 준비를 하긴 했다.
하지만 젠븐은 오래 계획한 사람이었고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레슬리가 아직 의식불명인 상황에서 그쪽 세력이 밀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성하진이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입술을 다물었다.

상혁이 말했다.

"살리고 싶어요?"

"무슨 뜻이에요."

상혁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천천히 말했다.

"차남현이랑 헤어져요. 그리고 내 옆에 있어요. 그러면 레슬리를 도울게요."

성하진이 잠깐 멍해졌다.

*내가 지금 신파극 주인공도 아니고 왜 이런 전개가 나오는 거야.*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레슬리가 이번을 버티면 이후는 달라진다.
하지만 이번을 못 버티면, 상혁을 지금 거절해도 힘의 구도가 바뀌지 않는다.

어차피 상혁이 더 큰 쪽이 된다.

차남현 쪽은. 흑화 수치 10. 임무 목표는 20 이하였다.
이미 달성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성하진이 입을 열었다.

"좋아요. 대신 나 아직 어려요. 혹시 이상한 사람이에요?"

상혁이 눈썹을 올렸다.

"스무 살 전에는 건드리지 않아요."

스무 살이 되면 건드리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뻔뻔하기도 하지.*

"그리고 어떻게 진짜로 도와주는지 확인은요? 끝없이 뒤로 미루면 어떡해요."

상혁이 웃었다.

"한 달 안에 결판나요. 내가 안 움직이면 그 안에 레슬리가 집니다."

"나를 미워하게 되는 건 나도 싫어요."

성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사됐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성하진이 먼저 일어섰다.

미안해요, 차남현.

잠깐이지만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