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호 부감독이 바로 언성을 높였다.
"후반에 더빙 들어가는 씬인데 그냥 피아노 치는 시늉만 잡으면 되는 거잖아. 여기서 NG가 왜 나!"
성서우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사과했다. 주변 배우들이 눈짓을 교환했다.
이 바닥에서 눈치 없는 사람은 없다. 다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봤다.
*그깟 대타 동생 영상 하나 봤다고 저렇게 흔들려? 멘탈 참 약하네.*
---
성하진은 자신이 성서우에게 얼마나 목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
서로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아도 그 열등감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걸 알 턱이 없었다.
축제 다음 날은 주말이었다.
성하진은 이른 아침부터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시내의 대형 병원으로 향했다.
차남현 어머니의 수술이 잡힌 날이었다.
온라인에서 '운명 개척자'라는 요상한 닉네임으로 꽤 이것저것 과하게 챙겨주다 보니,
차남현이 그 네트워크 상의 호구 형에게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어젯밤에도 게임을 마치고 오프라인으로 전환하기 전,
내일이 어머니 수술이라며 솔직히 좀 긴장된다는 뉘앙스의 메시지를 남겼다.
성하진이 건조하지만 다정하게 몇 마디 위로를 던졌다. 그리고 오늘 직접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지금은 곤경에 처한 동급생을 돕는 보호자 코스프레 입장이지만,
궁극적으로 이 몸의 주인이 살려면 차남현의 '연인' 루트를 타야 하는 빌어먹을 미션이 있으니까.*
병원 로비에서 성하진을 우연히 발견한 차남현이 흠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표정에 명백한 당혹감이 스쳤다.
하지만 어머니가 당장 수술실로 들어가는 급박한 참이었다.
간호사와 함께 다급하게 침대를 밀어야 했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엑스레이 필름도 챙겨야 했다.
혼자 감당하기엔 손과 정신이 부족했다. 성하진이 다가가 말없이 묵직한 짐들을 넘겨받았다.
수술실 육중한 철문이 닫혔다.
수술 중 불이 켜졌다.
차남현은 대기실 차가운 의자에 앉아 닫힌 수술실 문만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온몸의 근육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성하진이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조용히 말했다.
"너무 힘주고 있지 마. 로런 박사님, 저 분야에선 신급이야. 무조건 잘 될 거니까 걱정 마."
차남현이 그제야 성하진이 아직 옆에 남아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인식한 듯 고개를 돌렸다.
눈빛이 흔들렸다. 왜 자꾸 선을 넘냐고,
당장 꺼지라고 날 선 말이 턱끝까지 올라왔다가 이내 목구멍으로 억눌러 삼켰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멍했다. 벼랑 끝에 혼자 서 있는 것처럼 속이 허공 같았다.
이럴 때 아무 이유 없이 옆에 누군가가 있어 준다는 게, 빌어먹게도 자꾸 기대고 싶은 버팀목처럼 느껴졌다.
---
대수술은 장장 일곱 시간이나 걸렸다.
마침내 수술실 불이 꺼졌다. 문이 열렸다.
차남현이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전신이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였다. 긴장감에 목이 메어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금발 머리의 로런 박사가 피 묻은 마스크를 내리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수술 아주 완벽하게 잘 끝났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차남현이 그제야 참았던 숨을 길게 토해냈다. 허리까지 굽히며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짐승처럼 몇 번이나 쉰 목소리로 반복했다.
성하진이 차남현의 등 뒤에 서 있다가, 마스크를 벗은 로런 박사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아. 씨발, 맞다.*
원래 이안 아르트, 즉 성하진 본인과 로런 박사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그 사실이 이제야 뇌리를 스쳤다.로런 박사가 빙긋 웃으며 성하진 쪽으로 걸어왔다.
"이게 누구야, 우리 귀여운 이안 아니니? 한국에선 오랜만이네."
차남현은 아직 수술실에서 나오는 어머니 쪽으로 모든 신경이 쏠려 있어, 등 뒤의 이 은밀한 대화를 듣지 못했다.
성하진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조용히 목례를 건넸다.
"로런 아저씨. 오랜만에 뵙네요."
로런 박사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찡긋하며 속삭였다.
"저기 서 있는 무서운 표정의 학생이 네 남자친구야? 레슬리한테는 한국에 애인 생겼다고 얘기했어?"
성하진이 차남현의 굳은 등짝을 잠깐 노려봤다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냥 학교 친구예요. 무리해서 일정 빼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따로 꼭 찾아뵐게요."
"고맙긴. 나야말로 네 아버지 레슬리한테 크게 빚진 게 있어서 온 건데.
이번 기회에 그 친구 와인 셀러에서 제일 비싼 놈으로 하나 골라 가야겠어……."
잠시 후 로런 박사가 의료진과 함께 대기실을 떠났다.
차남현은 간호사를 따라 어머니를 VIP 병동으로 이송하는 내내 침대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어머니가 병실에 안착하고, 바이탈이 안정적으로 돌아온 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어깨의 긴장이 풀렸다.
병실 밖으로 돌아나왔을 때, 성하진이 여전히 복도 한켠에 삐딱하게 기대서 있었다.
성하진이 먼저 시선을 맞추며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부담스럽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마. 너 혼자면 보호자 서명하고 짐 챙기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내가 마침 주말이라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온 것뿐이야. 그냥 동급생으로서 당연히 돕는 척 좀 해본 거야."
차남현이 잠깐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까지 나한테 공들이는 이유가 뭡니까. 진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성하진은 그 차가운 어투의 속내를 바로 알아챘다.
여전히 자신에게 대가성 흑심이 있다고 경계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쏟아붓는 구원의 손길엔 반드시 대가가 따를 거라고.
성하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너랑 나 사이에 꼭 그렇게 계산적으로 따져야 해?"
차남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을 좁혔다.
"우리 사이가 대체 무슨 사이인데요."
성하진이 슬쩍 차남현을 올려다봤다. 일부러 살짝 상처받은 척, 풀 죽은 표정을 장착했다.
"나 너 좋아한다고 예전에 고백까지 했었잖아. 근데 네가 아직도 날 그렇게 벌레 보듯 남처럼 쳐내면, 솔직히 나도 좀 많이 서운해."
차남현이 기가 막힌다는 듯 성하진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그 말간 얼굴 어딘가에 진짜로 서운한 기색이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해서, 차남현의 미간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성하진이 한 발 물러나며 나직하게 제안했다.
"뭐, 사람 마음을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겠지. 그럼 이렇게 해. 평생 나 좋아해 달라고 안 할 테니까, 딱 석 달만.
석 달 동안만 나랑 진지하게 사귀는 척해 줘. 그다음엔 네가 정말 싫다고 원하면 군말 없이 깔끔하게 떨어져 줄 테니까."
차남현이 침묵 속에서 입술을 깨물며 갈등하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이내 체념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성하진의 굳어있던 표정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어머니 아직 깨어나시려면 한참 남았으니까 곁에 있어. 나는 피곤해서 먼저 갈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경쾌하게 손을 흔들고 성하진이 홱 돌아섰다.
병원 복도를 걸어 나오는 성하진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
차남현은 어머니가 잠든 VIP 병동 앞 벤치에 허탈하게 주저앉았다.
거친 손으로 미간을 짚은 채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저 싸이코패스 같은 자식이 진짜로 나한테 원하는 게 대체 뭘까.*
석 달 사귀자고? 설마 그깟 고백이 진심이겠어. 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그런데 대체 나 같은 빈털터리한테서 뭘 뜯어먹으려는 건지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때 주머니의 핸드폰이 울렸다.
"배달 앱 결제 완료 건입니다. 병원 1층 안내 데스크에서 도시락 찾아가시면 됩니다."
차남현은 핸드폰 화면을 천천히 내렸다.
오늘 자신이 이 병원 몇 호에 짐을 풀었는지 아는 사람은 방금 떠난 성하진뿐이었다.
자기가 꼬박 하루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굶었다는 것도.
생색내는 말 한마디 없이, 자기가 돌아가면서 알아서 배달을 시켜두고 간 거였다.
차남현은 한동안 텅 빈 복도를 멍하니 응시하며 앉아 있었다.
---
집에 돌아오니 낯선 정장 차림의 직원들이 와 있었다. 고급스러운 예복과 보석함 패물을 바리바리 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제야 생각났다. 며칠 뒤 어머니 성희수의 지인 집안 자녀 약혼식이 있었다.
어머니와 성하진 둘 다 참석하기로 돼 있었는데,
S국의 아버지 레슬리가 그 소식을 듣고 미리 최고급 예복과 세팅된 패물을 보낸 것이었다.
두 벌의 예복 디자인이 맞춘 듯이 똑같았다.
노골적인 패밀리 룩이었다. 거기다 성희수에게 안길 거대한 꽃다발도 두 개였다.
별거 중이면서도,
레슬리가 아내 성희수를 얼마나 집요하게 챙기고 소유욕을 부리는지가 이런 쓸데없는 디테일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성하진은 제 몫의 예복을 훑어보다가 서늘한 생각에 잠겼다.
요 며칠 사이 정보 시스템을 탈탈 털어 파악한 팩트가 있었다.
원작에서 아버지가 끝내 몰락하고 짐승들의 먹잇감이 되는 건, 단 하나의 오판 때문이었다.
아르트 가문 내의 피 튀기는 권력 투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필드 가문의 장남, 즉 차기 후계자인 필드 남작과 섣불리 손을 잡은 것이었다.
겉보기에 필드 남작은 그 가문에서 가장 세력이 강하고 정통성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그 콧대 높은 필드 가문은 결국, 가문 내에서 개 취급받던 혼혈 사생아 한 놈한테 완벽하게 안에서부터 먹혀버렸다.
그 미친 사생아가 바로 보건실의 그 이중인격자, 상혁이었다.
레슬리는 필드 남작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뒤로 상혁을 견제하고 밟았다.
그런데 상혁은 이미 레슬리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역으로 함정을 팠다.
결국 무능한 필드 남작이 내부 권력 다툼에서 상혁한테 처참하게 목이 썰리자,
레슬리는 하루아침에 동맹을 잃고 사방이 적들로 막혀버렸다. 상혁의 자비 없는 피의 보복이 시작됐다.
거기에 기다렸다는 듯 아르트 가문 내부의 적들까지 승냥이 떼처럼 동시에 들고일어났다.
천하의 레슬리도 그 무자비한 협공 사이에서 결국 비참하게 끝이 났다.
결론은 심플했다.
아버지가 병신 같은 필드 남작 대신 처음부터 상혁의 편에 섰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니면 최소한, 필드 남작이 결국 상혁한테 개죽음당할 거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성하진은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두드렸다.
내가 먼저 그 상혁한테 미끼를 던지며 접근해야 하나.
하지만 그 미친 알파한테 접근하는 게 자살 행위라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 놈은 도무지 껍데기가 몇 겹인지 알 수 없는 시커먼 괴물이었다.
---
이틀 뒤 저녁, 성하진은 완벽하게 세팅한 성희수와 함께 약혼식이 열리는 5성급 호텔로 향했다.
빌라에서 꽤 먼 시내 중심가였다.
택시를 불러야 하나 고민했는데, 성희수가 레슬리가 이미 의전 차량과 기사를 보냈다고 했다.
그제야 성하진은 서늘하게 깨달았다.
아버지가 이미 한국의 모자 주변에 여러 명의 감시 겸 경호 인력을 쫙 깔아두고 있었다는 걸.
성희수가 우아하게 웃으면서도 약간 피곤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네가 아빠한테 또 간섭한다고 화낼까 봐 그동안 일부러 숨어있으라고 했단다.
최근에 내가 옥상 사건 듣고 놀라서, 그때야 겨우 허락해서 앞에 나타나게 한 거야."
구질구질한 달동네 빌라 앞에 시꺼먼 외제 차 여러 대가 도열해 있으니, 윗집 아랫집 이웃들이 창문 너머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을 했다.
차에 오르자 성희수가 성하진의 손을 잡으며, 거처를 아예 보안이 철저한 고급 주택가로 옮기는 건 어떻겠냐고 넌지시 꺼냈다.
여기는 성희수 본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지만, 성하진에게는 영 맞지 않는 불결한 환경이었다.
성하진은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니라 이안 아르트, 그 거대한 마피아 가문의 핏줄이기도 했다.
생활 환경도, 경호 보안도 지금 수준으로는 택도 없었다.
성희수는 뼈대 있는 집안 며느리답게 감각으로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레슬리 쪽에 뭔가 심상치 않은 알력 다툼이 생겼고, 그래서 갑자기 한국 쪽 보안을 살벌하게 강화한 것이라고.
이럴 때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봤자 자기와 아들에게 타겟이 될 위험만 더할 뿐이라는 걸 현명하게 알고 있었다.
성하진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 조수석에 각 잡고 앉아 있던 경호실장이 무전기에 대고 바로 최고급 펜트하우스 새 거처를 준비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
화려한 호텔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며 성하진은 에스코트하듯 성희수의 팔짱을 꼈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건너편에 서서 아는 척을 하고 있는 주혜숙 모자였다.
성희수의 지인은 큰외삼촌인 성명훈과도 사업상 엮인 사이였는데,
성명훈이 요즘 빚쟁이 피해 해외로 도피 중이라 아내인 주혜숙과 조카 성서우가 대신 얼굴 도장을 찍으러 온 모양이었다.
뻔뻔하게도 주혜숙의 목에는 예전에 성희수에게 빌려갔던 그 화려한 원석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가짜 모조품으로 얼버무려 놓고도, 진짜는 자기가 태연하게 목에 걸고 사교장에 기어 나온 것이었다.
어차피 천사병 걸린 성희수가 그깟 목걸이 하나 때문에 체면 구기며 사람들 앞에서 판을 뒤집지는 않을 거라는 얄팍한 확신이 있는 것이었다.
성하진은 이미 성희수에게 가품 바꿔치기 건을 낱낱이 얘기해 둔 상태였다.
성희수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주혜숙 모자를 보고도 눈길 한 번,
아는 척 한 번 주지 않고 우아하게 고개를 돌려 안쪽 VIP 테이블로 걸어 들어갔다.
곧 연회장 주최자인 사모님이 버선발로 반갑게 다가와 성희수와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나눴다.
성하진은 옆에 서서 자연스럽게 인사 자리에 병풍처럼 끌려다녔다.
"어머머, 이게 하진이야? 이렇게 멋있게 컸어?
아유 진짜, 내가 우리 집 기집애 말고 아들을 하나 더 낳았어야 하는 건데. 아예 며느리로 우리 집에 들이고 싶다니까."
"하하, 우리 집엔 아직 멀쩡한 아들놈 남아 있으니까. 희수야, 우리 오늘 이 샴페인 짠 하고 원샷하면 당장 사돈 맺는 거다?"
성하진은 이런 진물 나는 사교계 입바른 소리 자리가 처음도 아니었다.
적당히 눈웃음치고, 적당히 예의 바르게 받아치며 한 바퀴를 돌고 나니 들고 있던 샴페인 한 잔이 이미 바닥나 있었다.
피곤해져서 조용한 테라스 쪽을 찾아 슬쩍 자리를 피했다.
할 짓 없는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서로 헐뜯고 보석이나 과시하는 자리에 가짜 미소 지으며 끼어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막 꺾어진 코너를 도는 순간,
상대도 시끄러운 연회장을 피할 생각이었는지 반대편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사람과 퍽, 하고 정면으로 부딪혔다.
"앗, 죄송합니…"
"성하진? 너……."
얼굴을 구기며 내려다보는 시선, 고태윤이었다.
고태윤은 오늘 어머니한테 속아서 억지로 정장 빼입고 끌려온 참이었다.
어머니가 구석에 유력 집안 소개받을 상대가 있다는 말에 인상 팍 쓰며 억지로 따라왔더니,
멀리서 슬쩍 봤을 때 재수 없는 성서우 모자가 그쪽에 서 있었다.
어머니가 늘 그런 식이었다.
기업에 도움 되는 집안이면 법적 나이 되자마자 덥석 정략결혼시켜버리는 게 제일 깔끔하다며,
아들 의사 따위 깡그리 무시하고 본인은 쓸만한 며느리 얻어 손주나 빨리 안아보고 싶은 게 목적이라는 걸 전혀 숨기지 않는 표독스러운 사람이었다.
그 숨 막히는 자리를 피하려고 핑계를 대고 황급히 몸을 돌려 빠져나오려던 참에,
고태윤도 앞을 못 봤고 성하진도 같은 방향으로 코너를 돌면서 재수 없게 정면충돌을 한 것이었다.
성하진의 어깨가 고태윤의 단단한 가슴팍에 제법 세게 부딪혔다.
고태윤은 순간 익숙한 체향에 한 박자 멍해졌다.
'웹소설 >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13화 (0) | 2026.05.08 |
|---|---|
|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12화 (0) | 2026.05.08 |
|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웹툰이면 이렇게? ㅋㅋㅋ (1) | 2026.05.08 |
|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10화 (0) | 2026.05.07 |
|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9화 (0) | 2026.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