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12화

울다미 2026. 5. 8. 16:58

그 순간.

옆에서 거대한 체구의 검은 수트 남자가 그림자처럼 나타나더니 고태윤의 어깨를 억센 힘으로 밀쳐내고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성하진 앞을 빈틈없이 막아섰다. 인간 방패 그 자체였다.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굳었다.
성희수가 소란을 눈치채고 그쪽을 향해 빠르게 걸어왔다.

"스워트, 무슨 일이에요?"

스워트가 딱딱한 K국어로 보고했다.

"이안 도련님께서 불쾌하실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성하진이 얼른 수습했다.

"저 괜찮아요. 이쪽은 고태윤 선배라고, 학교 지인이에요."

성희수가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워트, 여긴 안전하니까 너무 날 세우지 않아도 돼요."

스워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고태윤을 경계하며 성하진의 지시만 기다렸다.

성하진이 손짓했다.

"나 괜찮아. 물러가도 돼."

스워트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더니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시선이 성하진에게 쏠렸다.

연회장 주인이 사색이 되어 다가와, 성하진과 부딪혔던 다른 하객을 데리고 갔다.
하객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건가요?"

연회장 주인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속삭였다.

"당신 S국에서 몇 년 살았다고 했죠? 근데 '아르트' 가문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방금 저 모자가 아르트 직계라고요."

하객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

스워트가 사라지고 나서도 성서우와 그 옆 찌질한 무리들의 넋 나간 표정은 돌아오질 않았다.
특히 성서우. 성하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지독한 의심과 경악으로 뒤섞여 요동치고 있었다.

고모가 늘 S국에서 별 볼 일 없는 화가와 결혼했다고만 했는데. 
방금 저 무시무시한 덩치들의 경호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리고 저 미친 퀄리티의 맞춤 수트도.
성서우가 입술을 떨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진아, 너……."

"미안, 나 피곤해서. 좀 쉬다 올게."

성하진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짧게 잘라내고 고태윤에게 가볍게 턱짓으로 인사한 뒤 안쪽 휴식실로 유유히 걸어갔다.
성서우가 멍하게 그 꼿꼿한 뒷모습을 바라봤다. 옆 아이들이 뒤늦게 웅성거리며 수다를 이어갔다.

"야, 저거 다 돈 주고 섭외한 연출 아냐? 경호원 알바 쓴 거겠지, 진짜 웃기지 않아?"

"그러니까, 지가 무슨 마피아 보스라도 되는 줄 알고. 저거 나중에 들통나면 민망하지도 않나?"

성서우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태윤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그 아이들 쪽을 불쾌하게 쏘아보다가 미간을 좁혔다.

"나도 피곤해서. 먼저 간다."

짧게 통보하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성서우가 그 자리에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가 간신히 가다듬었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억지로 내색하지 않았다.

*학교에선 다 허세라고 했는데.*

*혹시…… 진짜 아르트 가문인 건가.*

---

성하진은 외부인이 없는 VVIP 휴식실 소파에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머릿속으로 정리해야 할 게 있었다.

아버지가 한국의 경호 수위를 갑자기 이렇게까지 살벌하게 높인 건, 그쪽 본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뜻이었다. 
누군가 약점인 자신들 모자를 인질로 건드릴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했다.

세계에서 손꼽히게 치안이 좋은 나라에 있으면서도 이 수준이라면.
성하진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트 가문의 피를 잇고 태어났다는 건 이런 저주 같은 의미였다. 
수천억 짜리 고성이 유산으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언제 명줄이 끊길지 모르는 표적이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때 뒤쪽 창문 쪽에서 덜컹, 하는 소리가 났다.
성하진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퍼런 칼날이 창틈을 비집고 들어오더니 잠금장치를 끊고 창문이 열렸다. 
붉은 피가 범벅이 된 손이 창틀을 꽉 틀어쥐었다.

성하진이 자리에서 반쯤 일어섰다. 
누구냐고 소리를 내려는 순간, 창문을 넘어 굴러 들어온 짐승 같은 실루엣의 얼굴을 봤다.

상혁이었다.

상혁도 성하진을 보고 순간 흠칫 굳었다.
 한 손에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쥔 채로, 검은 옷 위로 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는 성하진이라는 걸 확인하더니 짐승 같은 속도로 빠르게 안으로 들어와 창문을 닫고 창틀의 핏자국을 소매로 닦아 지웠다.

거의 동시에 휴식실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도련님?"

스워트의 목소리였다.

상혁의 날카로운 눈빛이 미친 듯이 돌아갔다. 
그러더니 총을 등 뒤 벨트에 쑤셔 넣고, 소파 앞 카펫에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힘없이 성하진의 무릎 쪽에 몸을 기댔다. 

피에 젖은 얼굴로 살짝 눈을 내리깔고 성하진을 절박하게 올려다봤다.

"밖에서 미친개들이 쫓고 있어요. 제발, 한 번만 살려줘요."

성하진은 멍하니 그 치명적인 연극을 내려다봤다.

*이 미친놈, 또 이 수법이야.*

"도련님, 들어가겠습니다."

문손잡이가 돌아가며 벌컥 열렸다. 
스워트가 들어서자마자 성하진 발치에 널브러진 상혁을 발견하고 즉각 총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성하진을 등 뒤로 보호하며 소리쳤다.
"제 뒤로 물러서십시오!"

복도 뒤에 대기하던 검은 수트 셋이 더 들이닥쳤다. 
총구 네 개가 일제히 상혁의 머리를 향했다.

성하진은 그 짧은 순간 냉정하게 머리를 굴렸다.

상혁이 오늘 여기서 개죽음당할 운명인가. 
아니다. 시스템을 통해 아는 원작의 내용은, 오늘 밤 상혁은 무사히 살아서 빠져나간 뒤 필드 가문을 장악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스워트에게 넘기든 쫓아내든, 결국 이 놈은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총 거둬요. 제 친구입니다. 절 해치려는 게 아니에요."

상혁이 바닥에 엎드린 채 흥미롭다는 듯 성하진의 꼿꼿한 등을 바라봤다.

스워트가 험악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도련님, 이 자는 필드 가문의 위험인물입니다. 살려둘 수 없습니다."

성하진이 곁눈질로 잠깐 상혁 쪽을 내려다봤다.

상혁은 여전히 처연하고 무고한 표정으로 성하진의 바짓단을 쥐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 진심 따위 1그램도 없다는 건 성하진도 잘 알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상관없어요. 밖에서 다쳐서 제게 도움을 청한 사람입니다. 제가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스워트가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나왔다.

"도련님, 이 자를 숨겨준 사실이 보스께 알려지면 보스께도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성하진은 속으로 차갑게 중얼거렸다.

*네 보스인 우리 아빠 살리려고 내가 이러는 거다, 이 멍청아.*

물론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성하진은 그 자리에서 한 치도 꼼짝하지 않고 스워트를 똑바로 마주 봤다.

"이 사람은 무사히 나갈 때까지 이 방에 머뭅니다. 
이 사실을 아버지께 가감 없이 보고하는 건 허락하죠. 그 뒤의 정치적 판단은 아버지가 알아서 하실 테니까."

스워트의 흉터 진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다가, 결국 주인의 명령에 굴복하며 천천히 총을 거뒀다.
나머지 경호원들도 일제히 무기를 내렸다. 스워트가 짧고 묵직하게 고개를 숙인 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성하진은 그제야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돌아서자, 상혁이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성하진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진짜로 자신을 감싸줄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한 기색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레슬리와 아르트 가문에 얼마나 껄끄러운 적재인지 알면서도.

그저 죽기 전 발악처럼 장난 삼아 던져본 목숨 구걸이었는데, 이 도련님이 진짜로 제 권력을 써서 총구를 막아준 거였다.
상혁의 표정에 호기심, 의심, 그리고 짙은 흥미가 복잡하게 스쳐 지나갔다.

성하진은 상혁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1인용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혁이 그 서늘한 모습을 보다가, 툭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고마워요. 목숨 빚졌네."

성하진은 그를 무심히 건너다보곤 시선을 내렸다. 대꾸하지 않았다.
이 미친놈의 빚을 어떻게 내 패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계산 중이었다. 
아니면 애초에 이놈한테 자비를 베푼 것 자체가 의미 없는 도박이었을까.

원작에서 상혁은 은혜 따위 갚는 인간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다. 
소파 맞은편에서 성하진의 속을 꿰뚫어 보듯 관찰하던 상혁이 문득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예쁜 머리로 너무 복잡하게 계산할 거 없어요."

성하진이 날 선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상혁이 피 묻은 손으로 턱을 괴며 씩 웃었다.

"걱정 마요. 오늘 일로 당신 가족이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니까."

성하진은 그 말을 믿는지 마는지 알 수 없는 차가운 얼굴로 그를 빤히 보았다.
상혁은 그 경계하는 고양이 같은 태도가 묘하게 구미를 당기는지 눈을 가늘게 좁혔다.

화려한 수트를 차려입고 연회장에서 가장 빛나야 할 후계자가, 지금은 피투성이 살인마를 앞에 두고 혼자 심각하게 판을 짜고 있었다. 
이 맹랑한 아이가 어디까지 계산하고 자신을 살렸는지까지는 몰라도, 단순히 마음이 약해서 구해주었다는 건 절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미치게 흥미로웠다.

잠시 후 상혁이 손목시계를 힐끗 확인했다. 
밖의 타이밍을 재는 듯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자리에서 훌쩍 일어섰다.

"이제 난 가야겠네요."

성하진이 그를 경계하며 노려봤다. 상혁이 허리를 숙여 시선을 맞췄다.

"내 목숨 두 번이나 살려줬네요. 이 빚, 어떻게 갚아줄까요?"

성하진은 잠깐 생각하다가 피곤하다는 듯 건조하게 내뱉었다.

"됐습니다. 대신, 앞으로 우리 가족 목숨 가지고 장난질만 안 치면 그걸로 퉁치죠."

상혁이 예상외의 소박한 요구에 천천히 한쪽 눈썹을 까딱 올렸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끈적한 눈빛으로 성하진의 얼굴을 한 번 깊게 훑었다.

그리고 군말 없이 창문을 다시 열었다. 
망설임 없이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지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창문이 조용히 닫혔다.
성하진은 피 냄새만 남은 텅 빈 휴식실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봤다.

제대로 먹혔는지, 아니면 미친 짐승에게 헛수고를 한 건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

약혼식 다음 날 아침, 학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저장되지 않은 모르는 번호였다. 문자 한 줄이 전부였다.

[작은 선물입니다. 어젯밤의 감동적인 환대에 대한 답례로.]

성하진은 미간을 좁혔다. 누군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상혁 그 씹새끼 말고는 없었다.

*무슨 선물?*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평소와 다르게 폭발할 듯 웅성거리는 분위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자리에 앉아 핸드폰으로 교내 커뮤니티를 열어보고 나서야 그 '선물'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상혁이 며칠 전 학교 화단 옥상에서 찍었던 그날의 영상을 익명 게시판에 시원하게 까발린 것이었다. 
심지어 성서우가 조연으로 출연 예정인 드라마 공식 해시태그까지 악의적으로 전부 달아서. 

성서우가 소속사를 통해 캐스팅 프로필 컷을 뿌리며 언플을 시작하려던 찰나였는데, 
열기가 오르기도 전에 학교 폭력과 자작극 폭로글이 직격탄으로 터져버린 거였다.

고화질 영상에는 성서우가 비열하게 성하진의 진로를 막아서고 도발하다가, 
스스로 발을 걸고 자빠지며 주변 사람들을 선동하는 역겨운 과정이 필터링 없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성하진이 그 가증스러운 면상에 시원하게 뺨을 후려갈기는 장면까지.

댓글이 미친 듯이 쌓여갔다.

[와 씨발, 저 나이에 벌써 저런 정치질을 해? 천사표 코스프레 소름 돋네.]

[저 새끼 나오는 드라마 불매함. 연기는 학교에서 다 배웠네, 오스카상 줘야겠다.]

[저 여우 새끼 평소에도 성하진 존나 멕이더니 결국 지 무덤 팠네 ㅋㅋㅋ]

[그나저나 뺨 때리는 분 외모 미친 거 아님? 분위기 개쩌네…….]

[ㅇㅇ 나만 그거 보임? 성하진 수트핏 돌았음. 귀공자 그 자체임.]

[열 분 안에 성하진 인스타 주소 다 털어주세요. 오늘부터 내 이상형 선언함.]

[저 여우 새끼 뺨 후려갈기는 씬에서 체증 싹 내려감. 결단력 개사이다 ㅋㅋㅋ]

성서우는 그날 부로 드라마 제작사에서 조용히 하차 통보를 받았다.
학교 사정도 지옥이 되긴 매한가지였다. 

평소에 착하고 예쁜 천사표 사촌 형 이미지로 굳어 있던 성서우의 시커먼 속내가 전국구로 뽀록난 이상, 교내 여론은 완벽하게 뒤집혔다. 
학교 게시판에 성서우의 과거 만행을 폭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주혜숙의 모조품 목걸이 사기 건까지 털어놓는 목격자도 등장했다.

성하진은 흥미 없다는 듯 스크롤을 잠깐 훑어보다가 핸드폰을 책상에 엎어두었다.
옆자리의 조시우가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보며 경악한 얼굴로 성하진을 쳐다봤다.

"와, 하진이 형. 형이 완전 일방적인 억울한 피해자였던 거네? 근데 왜 여태 한마디도 안 하고 참았어?"

성하진은 그저 피식 웃었다.

*내가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것도 딱히 맞는 말은 아닌데.*

---

얼마 지나지 않아 성하진은 다시 학생지도부로 정식 호출을 받았다.
사무실 안에는 낯빛이 어두운 고태윤도 함께 불려 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하진을 쥐 잡듯 잡던 교무부장이 자리에서 뻘쭘하게 일어나더니, 
표정이 복잡하게 굳은 채로 성하진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성하진 학생. 미안하다. 선생으로서 자초지종도 모르고 오해했어. 오늘 부른 건 학교를 대표해서 정식으로 사과하려고."

옆에 서 있던 고태윤도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도 사과할게. 그때 네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는데, 눈이 멀어서 내가 먼저 널 밀쳤어. 
오해였다고 해도, 폭력을 쓴 건 내 명백한 잘못이야. 미안하다."

말은 억누른 듯 담담했지만, 고태윤의 시선에는 복잡한 감정과 죄책감이 가득 차 있었다. 
성하진은 그 흔들리는 눈빛을 읽으면서도 별다른 감흥 없이 건조하게 반응했다.

교무부장이 기침을 헛기침하며, 자작극을 벌인 성서우에 대해서도 학폭위 등 학교 차원의 엄중한 징계가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빼박 증거 영상이 전국적으로 공개된 이상, 학교가 덮고 넘어갈 수 있는 선을 넘은 상황이었다.

성하진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용하고 서늘하게 입을 열었다.

"사과는 받겠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지킬 힘이 있으니까요. 그것보다 선생님께 진심으로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교무부장이 긴장한 얼굴로 눈을 마주쳤다.

"말해봐라."

"앞으로 학생 한 명 한 명을 편견 없이 똑같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성적이 좋든 나쁘든, 
집안 형편이 찢어지게 가난하든 권력이 있든, 평소 이미지가 어떻든 관계없이요. 
얄팍한 평판으로 진실을 재단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교사가 해야 할 일 아닌가요."

목소리는 낮고 평탄했다. 조금의 감정적 동요도 없었다.
그런데 그 얼음 같은 건조함이 오히려 교무실의 공기를 무겁게 내리누르는 압도적인 무게가 있었다.

교무부장이 얼굴을 붉히며 긴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뼈저리게 깊이 새기마. 부끄럽다."

옆에 서 있던 고태윤은 그 짧은 설교를 듣는 내내 숨을 죽이고 성하진의 옆얼굴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말 한마디에 조금의 꾸밈도, 기교도 없었다. 그냥 자신이 믿는 신념, 있는 그대로의 날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