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15화

울다미 2026. 5. 8. 17:01

성하진은 차남현과 성서우의 대화가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아직 하교 전이었는데, 성희수한테서 연락이 왔다. 스워트가 직접 학교로 왔다.

집에 돌아오니 성희수의 팔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성하진이 굳었다.

경호원 중 한 명이 배신자였다. 
성희수를 공격하려던 것을 다른 경호원이 막아냈다.

"하진아, 나 S국으로 가야 해."

성희수의 얼굴이 창백했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레슬리가 사고를 당했어."

헬리콥터가 추락해 바다에 떨어졌다. 레슬리는 의식불명 상태였다. 
아르트 가문의 권력 싸움이 성하진이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격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성희수가 성하진을 꼭 안았다.

"레슬리 법정 상속인이 나야. 가야 해. 내가 여기 있으면 그 사람들이 너한테까지 손을 뻗어. 
내가 그쪽으로 가면 저 사람들 시선이 나한테 집중되고, 너는 안전해."

상속권이 성희수에게 있는 한, 그를 내버려 두면 재산 행방이 불투명해진다. 
위협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성희수 쪽으로 쏠린다. 성하진에게 손댈 이유가 사라지는 구조였다.

성하진은 알았다.
레슬리가 상속권을 성희수에게 넘긴 건 아이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는 걸.

"설득이 안 되는 거 압니다."

성하진이 조용히 말했다.

"가세요. 제 걱정은 마시고요. 제 몸은 제가 알아서 챙길 수 있습니다."

성희수가 잠시 성하진의 얼굴을 들여다봤다가 다시 꼭 안았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성희수는 짐 하나 챙기지 않고 경호원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내부 배신자가 또 있을 수 있어서, 잠재적 위협을 남겨두고 가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스워트만 남았다. 레슬리에 대한 충성심이 확인된 인물이었다.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성하진이 스워트에게 돌아섰다.

"당신도 가요. 본가에서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와요."

스워트가 미간을 좁혔다.

"저는 도련님을 보호해야 합니다."

"명령입니다."

성하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스워트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아르트 도련님."

떠나기 전 스워트가 총 한 자루를 성하진의 손에 쥐여줬다.

"부디 스스로를 지키십시오."

"알아서 합니다. 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이 조용해졌다.
성하진은 멈춰 서서 잠시 그 고요를 받아들였다.

자신이 진짜로 이 두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실감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자신을 먼저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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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노크 소리가 났다.
성하진이 돌아봤다.

[주혜숙입니다.]

시스템이 먼저 알려줬다.
성하진은 방범창 안쪽 문을 열었다. 

방범창은 잠긴 채로 뒀다.
주혜숙이 안을 기웃거리며 들여다봤다.

"하진아, 어머니 안 계셔?"

눈동자가 집 안쪽을 스캔하고 있었다. 
눈치가 보였다. 성희수가 울면서 차를 타고 나가는 걸 본 게 분명했다.

"출장 가셨어요."

"아이고, 걱정되네. 얼마 동안이야? 너 혼자 있으면 어떡해, 내가 법적 보호자나 마찬가지인데……"

성하진은 주혜숙을 바라봤다.

원본 시나리오에서 주혜숙은 성희수가 급히 자리를 비운 그날, 관심 있는 척 들어와서 성희수 방에 있던 패물함을 들고 나갔다. 
그게 성희수가 성하진에게 남겨두고 간 재산이었다.

"안 들어오셔도 됩니다."

"얘가, 문 왜 안 열어. 아무리 그래도 숙모가 왔는데"

"억지로 들어오시면 경찰 부를 겁니다."

주혜숙이 눈을 크게 떴다.
말이 더 나오기 전에 성하진이 안쪽 문을 닫았다.
주혜숙이 욕 한마디를 내뱉고 발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

주혜숙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 확인한 뒤, 성하진은 바로 움직였다.
성희수 방을 먼저 뒤졌다. 자기 방도 뒤졌다. 패물 상자며 케이스며 전부 꺼내 가방에 쓸어담았다.

그리고 집을 나섰다.

은행으로 갔다. 대형 은행 지점에서 금고를 임대했다. 
패물 종류와 수량이 많아서 담당 직원이 한참 걸렸다. 

성하진은 묵묵히 기다렸다. 열쇠와 비밀번호를 받아들고 나왔다.
이건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원본 시나리오에서 원래의 성하진은 이 패물을 전부 잃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의지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성하진은 그런 결말로 가고 싶지 않았다.

레슬리가 살아남기를 바랐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에도 제 발로 설 수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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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은 근처 호텔에 묵었다. 들어오기 전 현금도 넉넉히 찾아뒀다.
다음 날, 시스템으로 확인하니 전날 밤 집에 누군가 침입했었다.

성하진은 잠깐 굳었다가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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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오자 그제야 좀 숨이 트였다. 
사람이 많은 공간이 이렇게 안도감을 주는 게 어색했다.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생각이 돌아갔다.

레슬리를 살릴 방법이 있어야 했다. 근본적으로는 그게 가장 중요했다. 
아르트 가문 내부 권력 구도를 바꿀 수 있는 건 상혁이었다. 

필드 가문 싸움의 승자가 상혁이라는 걸 레슬리가 미리 안다면 선택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기운이 강한 사람 옆에 있는 게 나았다.

원본 시나리오에서 고태윤은 기운을 타고난 쪽이었다.
성하진은 한동안 고민했다.

그런데 막상 생각하면 할수록 고태윤은 무리였다. 
그 알파는 겉보기엔 멀쩡한데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충만했다. 

같이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피곤해서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자기 목숨을 위해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포기했다.
차라리 혼자 버티는 쪽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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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고태윤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고태윤: 할 말 있는데 교문 앞에서 볼 수 있어?]

성하진은 잠시 보다가 답했다.

[성하진: 응.]

이전 같으면 무시했을 텐데. 고태윤이 핸드폰을 보며 한 박자 멈췄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문 앞에서 한참 기다리다가 성하진이 무심하게 걸어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성인식 파티가 있어. 내 파트너로 와줄 수 있어?"

성하진이 미간을 좁혔다.

"저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알아. 나이 차이가 약 일 년이거든. 그러면 나한테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냐?"

성하진이 그를 잠깐 바라봤다.

"……부담스럽네요."

고태윤이 기침을 터뜨렸다.

"알겠어,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 그냥 파트너로 와달라는 거야. 안 돼?"

성하진은 고태윤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목숨이 위험하니까, 기운 강한 사람 옆에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고태윤의 얼굴을 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잘생겼지만 그걸 본인도 아는 티가 너무 났다. 
아직 어린데 이 정도면 나이 들어서 어떻게 되나 싶었다.

성하진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미안하지만, 관심 없습니다."

돌아서려는데 손목이 잡혔다.
성하진이 발을 멈추고 고태윤을 돌아봤다.

"관심 없다고 했는데요."

고태윤이 성하진의 눈빛을 보고 손을 놓았다. 표정이 조금 수습됐다.
평소였으면 벌써 자리를 떴을 텐데, 오늘은 그게 안 됐다.

"이전에 네가 나한테 할 말 있다고 했잖아. 
그때 내가 듣지 않고 가버렸어.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어."

성하진이 멈췄다.

"……제가 뭘요?"

고태윤이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흑화 수치 경보. 차남현 즉시 흑화 수치: 50.]

성하진의 등이 굳었다. 반사적으로 주변을 훑었다. 
저 멀리 복잡한 얼굴의 차남현이 등을 돌리고 걷고 있었다.

성하진은 고태윤을 향해 말했다.

"급한 일 생겼습니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차남현 쪽으로 걸음을 뗐다.
뒤에서 고태윤의 표정이 굳는 게 느껴졌다.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틀을 다른 일에 치여서 차남현을 거의 방치했다. 
뭔가 터진 게 분명했다.

"야, 차남현!"

차남현이 대꾸하지 않았다. 걸음만 이어갔다.
성하진이 숨을 가다듬으며 따라붙었다.

"불렀는데 왜 무시하고 가."

옆에 나란히 붙으며 말을 걸었다. 
인사도 하고 뭔 일인지 슬쩍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차남현이 반응이 없었다.

*원래도 철벽이라 잘 안 받아주긴 했지만……*

그때 성하진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스쳤다.

차남현이 본래 반응이 없는 사람이긴 한데,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게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흑화 수치가 올랐다는 건 뭔가 나쁜 방향으로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혹시…… 자신과 관련된 일인가?

*그리고 스워트도 보냈는데 지금 이 몸의 상황이 좀 궁리를 해야 할 텐데.*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겹치는 사이에, 입이 먼저 움직였다.

"차남현, 혹시 오늘 밤 네 집에서 신세 좀 져도 되냐?"

내뱉고 나서 스스로도 멈칫했다.

*아, 이건 아닌데. 박시온 씨가 회복 중인데 거기다 위험을 끌고 가면 민폐잖아.*

"……아니다, 잊어라. 생각 없이 헛소리했다."

바로 취소하려는데, 차남현이 걸음을 멈췄다.
돌아봤다.

눈빛이 칼날처럼 차가웠다. 
그 안에 무언가 더러운 진실을 안 사람의 눈이었다.

"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였습니까?"

노골적으로 빈정거리는 투였다. 뭔가가 분명히 어긋나 있었다.
성하진이 그 눈빛을 읽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오해라도 있어?"

성하진의 표정은 진짜로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차남현이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열어 성하진 앞에 들이댔다.

음성 파일이 재생됐다.

"차남현? 길고양이처럼 떠도는 주제에 고태윤 선배랑 비교가 돼?"

"자존심? 걔가 무슨 자존심? 가난에 치여 등이 굽는 날을 기다리면 되지."

"당연히 갖고 노는 거지. 그게 재밌잖아, 안 그래?"

"알바 자리는 다 막아놨어. 나 말고는 돈 벌 데가 없어.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지."

성하진은 듣는 동안 굳어 있었다.

소리가 멈췄다. 자신의 목소리였다. 
자신이 한 말이 아니었다. 빙의하기 전, 원래 이 몸의 주인이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그 업보가 오롯이 자신에게 씌워진 것이었다.
변명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이 몸의 목소리로 일어난 팩트니까.

성하진이 입을 열지 않자, 차남현이 차갑게 비웃었다.

"할 말 없습니까."

그리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

성하진이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결국 거친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돌렸다.
억울하다고 등 뒤에 소리쳐봤자 변하는 게 없었다.

오늘 밤은 다시 집으로 가기로 했다. 
어젯밤 이미 한 번 침입이 있었으니, 역설적으로 오늘 밤은 그쪽이 더 안전할 수도 있었다. 
같은 곳에 연달아 들이닥칠 가능성은 낮았다.

시스템을 통해 확인하니 아직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은 없었다.

택시를 잡았다. 
기사에게 집 주소를 건조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