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25화

울다미 2026. 5. 10. 14:39

판타지 소설도 이렇게는 안 쓰겠다 싶었다.
성서우는 참지 못하고, 혹은 의도적으로 낮게 소리를 냈다. 

여러 시선이 쏠렸다. 차남현도 차갑게 시선을 돌렸다.
성서우가 재빨리 말했다.

"저, 저는 성서우예요. 고등학교 동창인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성서우……

차남현의 눈빛이 순간 팽팽하게 긴장했다. 
잠깐 뒤에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성하진은……잘 지내고 있나요."

그 이름을 입에서 꺼내는 데 엄청난 무게가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성서우가 순간 굳었다. 그리고 문득 당시 소문이 떠올랐다.

성하진이 사라지기 전, 차남현을 심하게 갖고 놀다가 차버렸다는 얘기. 
학교에 꽤 퍼져 있었다. 차남현이 매일 아침 챙겨다 줬고, 빗속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도.

성서우는 아까 차남현한테 먼저 말을 걸었던 걸 슬그머니 후회했다.
혹시 성하진 때문에 자신에게 불똥이 튀면 어쩌나.

조태성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서우가 대표님이랑 아는 사이였어요?"

성서우는 피할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억지로 웃었다.

"예전에 같은 학교를 다녔어요. 대표님이랑…… 그리고 성하진은, 
5년 전부터 연락이 끊겼어요. 그 이후로는 왕래가 없었고요."

차남현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어조가 다시 차갑게 평탄해졌다.

"그렇군요."

그리고 바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조태성이 두어 발 따라가며 말했다.

"대표님, 이따 회의에서 청성 건은 부디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저……"

차남현이 말을 끊었다.

"조 대표님, 저는 사업을 하러 온 거지 자선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조태성의 웃음이 굳어졌다. 더 말하려 했지만 차남현 뒤에 선 인원이 가로막았다. 
젊은 대표는 온몸에서 냉기를 풍기며 사라졌다.

조태성과 성서우는 밖의 대기실로 돌아와 예약 시간을 기다렸다.

조태성이 낮게 말했다.

"서우야, 이번에 회사가 버티느냐 마느냐가 네 손에 달렸어."

성서우가 고개를 들었다. 조태성의 의미심장한 눈빛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이랑 동창이면 그게 기회야. 한 번만 제대로 잡아봐. 
대표님 OK 받으면 이후 회사 자원은 네가 원하는 대로 써도 돼."

성서우의 눈빛이 반짝였다가, 입술을 꽉 다물었다.

"……열심히 해볼게요."

---

베리열 촬영장.

세 남자가 스타 밴에서 내려 안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내가 잘 봐달라고 했잖아. 무현이를 누가 잡아먹기라도 해?"

임지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앞머리를 가지런히 자른 남자가 핀잔을 줬다.

"나도 우택현 사인 받으러 가는데, 가면서 나 꺼도 하나 받아와, 알았지?"

그리고 지목된 남자, 아마빛 곱슬머리에 손바닥만 한 얼굴, 도자기처럼 흰 피부, 눈썹이 살짝 올라간 눈.
성하진이 어이없이 웃었다.

"네 남자친구 무현이 질투하면 어쩌려고."

주문학이 입을 삐쭉였다.

"표시 박으러 가는 거라고. 내 마음속엔 우리 무현이밖에 없거든요. 너 같은 아이돌 덕후랑 달라."

성하진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태도로 사인 받아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에요? 안 받아줄 것 같은데."

세 사람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렸다.

---

5년 전, 성하진은 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졌다. 
시스템의 초보자 보호 기간 덕에 살아남았다. 

아르트 가문으로 돌아간 뒤, 레슬리와 성희수가 논의해 젠븐 잔당이 다시 성하진을 노리는 걸 막기 위해 아이비 아르트의 "장례식"을 치렀다.
그렇게 성하진은 S국 쪽으로 일절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후 젠븐 잔당이 완전히 숙청되고, 더 이상 위협이 없어졌다. 
그때 차남현의 흑화 수치는 30까지 낮아져 있었고, 레슬리를 도운 부분에서 추가 점수까지 받아 시스템은 임무 완료를 선언했다.

걱정이 사라진 성하진은 조용히 사는 작은 부자로 지내는 게 제일 편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레슬리와 성희수가 "부활"을 권했지만 거절했다. 

"아이비"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수능을 봐 대학에 입학했다.

지금은 석사 1년차였다.
두 친구 임지수와 주문학은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임지수는 3학년 때 길에서 스카우트되어 연예계에 들어갔고, 지금은 중소 배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사실 성하진이 스카우트 제의를 더 많이 받았다. 전부 단호하게 거절했다. 

연예계에 발을 들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트 가문으로 끌려갈 게 뻔했다.
주문학은 대학원 재학 중이었다. 최근에 연기 전공 남자친구 무현이 생겼다. 

그를 임지수 편으로 베리열 드라마 촬영장에 소개해줬다.
오늘 성하진과 주문학이 임지수 어시스턴트 자격으로 촬영장에 들어온 것이었다. 

주문학은 남자친구 얼굴을 보러, 성하진은 자신이 최근 새로 좋아하게 된 배우 우택현의 사인을 받으러.

"쉿, 화장실에서 보정하고 있다니까. 직접 놀래켜줘."

임지수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발걸음이 딱 멈췄다.
뒤따르던 성하진과 주문학도 동시에 굳었다.

휴게실 문 바로 앞이었다.
문 너머로 낮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익숙한 남자 목소리.

"……여자친구가 무슨, 그냥 아는 사이고요……네, 저는 월 선배가 좋아요……"

주문학의 남자친구 무현의 목소리였다.
주문학이 굳었다. 다음 순간 얼굴빛이 변하며 곧바로 문을 두드렸다.

안쪽이 조용해졌다.
그때 드라마 여자 2번 윤월하의 매니저가 화장실 쪽에서 손을 닦으며 나오다가 문 앞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보고 눈이 커졌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게 무슨 일이야.

"아, 임지수 씨, 월하 언니 보러 오신 거예요? 아까 머리 좀 아프다고 하셔서 주무실 수도 있는데, 나중에……"

"자고 있다고요?"

임지수가 차갑게 웃었다.

"모르는 남자랑 자겠죠."

매니저 얼굴이 굳었다.
임지수가 손을 들어 문을 쾅쾅 두드렸다.

"윤월하, 지금 촬영장 전체가 알길 원해요?"

매니저가 달려와 뜯어말리는데, 문이 열렸다.

윤월하가 불쾌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옆에 준수한 얼굴의 남자, 바로 주문학이 촬영장에 넣어준 무현이었다.

무현이 방금 윤월하와 뭘 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주문학이 손을 들어 뺨을 갈겼다.

찰싹.
무현이 맞은 얼굴을 감싸며 눈빛이 차갑게 바뀌었다.

"주문학, 때릴 거면 얼굴은 빼줘. 나 이따 촬영해야 해."

당황한 기색이나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주문학이 차갑게 웃었다.

"창피한 줄 알기나 해?"

윤월하의 얼굴도 굳어졌다. 
임지수 세 사람을 차갑게 훑어보더니 느릿하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와서 얘기해요. 임지수 씨, 설마 이걸 크게 터뜨리고 싶지는 않잖아요."

매니저가 등을 밀며 소곤거렸다.

"들어가서 얘기하세요, 들어가서요."

"손 치워요."

임지수가 매니저 손을 뿌리치고 들어갔다. 
주문학 앞에 막아서면서 무현을 밀쳐냈다.

"본인은 아직 촬영 자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현의 얼굴이 굳어졌다가 윤월하 쪽을 봤다.
윤월하가 무현을 향해 눈짓으로 안심시키며 말했다.

"뭘 겁내요, 그냥 보내줘요. 어떻게 되나 볼 테니까."

임지수가 순간 굳었다.

여자 3번인 자신보다 윤월하가 한참 위였다. 
인지도도, 작품 내 비중도. 그게 현실이었다.

이 상황에서 윤월하가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다니 싶었지만,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예요?"

"무슨 소리냐고요?"

윤월하가 차갑게 웃었다.

"본인 휴게실에 들이닥쳐서 제 사람한테 손을 댔는데, 사과가 먼저 아닌가요?"

주문학이 참지 못했다.

"당신 사람이요? 바람은 양아치 남자가 당신 사람이에요?"

무현이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윤월하가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곧 연결됐다.

"아빠, 나 촬영장에서 좀 억울한 일이 있어서. 한 명 교체해줄 수 있어?"

윤월하의 아버지가 이 드라마의 최대 투자사 청운 테크 임원이었다.

"누가 우리 딸 건드렸어? 말해."

윤월하가 임지수를 바라보며 핸드폰을 흔들었다. 
입 모양으로 말했다.

"사과해요."

방 안이 얼어붙었다.

주문학은 임지수의 굳은 얼굴을 보며 속이 뒤집혔다. 
자기가 사람을 잘못 봐서 임지수까지 끌어들인 것이었다.

임지수가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힘든 길을 걸었는지 누구보다 알았다. 
자본한테 찍혀서 이 자리를 잃으면, 그건 자신이 망친 거나 마찬가지였다.

주문학이 이를 악물고 한 발 나섰다. 
억울하지만 먼저 사과하려고.

그 순간 손목이 잡혔다.
돌아보니 아직 한마디도 안 하고 있던 아이비가 핸드폰을 들고 윤월하를 향해 씩 웃고 있었다.

"윤 씨, 이쪽 카메라 보세요. 방금 하신 말씀 다시 한 번만 해주시겠어요?"

윤월하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현이 반응도 기다리지 않고 핸드폰을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성하진이 발을 들어 그 배에 정확히 차넣었다. 무현이 무릎을 꿇으며 신음을 흘렸다.

성하진이 핸드폰을 집어넣고 눈을 가늘게 떴다.

"계속하세요, 윤 씨.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얼마나 대단하신지 저도 한번 보고 싶네요."

임지수와 주문학의 눈이 동시에 빛났다.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참았지만, 속으로는 아이비한테 환호를 보내고 싶었다.

맞은편에서 윤월하의 얼굴이 굳었다.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예요?"

성하진이 웃으며 말했다.

"윤 씨가 너무 기세등등하셔서요. 뭘 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바람피우는 남자 현장 잡고, 
이 영상 인터넷에 올려서 둘이 함께 여론의 심판을 받게 해드리려고요."

그러고는 임지수와 주문학 쪽을 돌아봤다.

"가자, 올리러."

두 사람이 따라서 몸을 돌렸다.

윤월하가 재빠르게 앞을 막아섰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아까 내가 좀 심하게 말했어요…… 말해봐요. 뭘 원해요?"

성하진이 임지수와 주문학을 봤다. 
손을 펼치며 말했다.

"당신들이 결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