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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16화

차남현이 가다가 멈췄다. 발이 저절로 서버렸다. 앞에 성서우 일행이 걷고 있었다. "성하진이 뭔 상관이야, 어차피 지금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 없잖아" "그런 말은 하지 마……" 성서우가 억지로 말리는 척했다. 차남현이 그 말을 듣고 멈췄다.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 없다.* 방금 성하진이 했던 말이 스쳤다. *네 집에서 잠깐 신세 져도 돼?* 그때 그냥 지나쳤다. 머릿속이 음성 파일로 꽉 차 있어서. 뭔가 생긴 건가. 차남현은 그 생각을 지우려 했다. 음성 파일에서 들은 그 말들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었다. 그걸 알면서 걱정이 앞서는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런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한테 신세를 진 적 있는 사람이었다. 그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면 됐다. 차남현이 왔던 방향으로 돌아섰다. ..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15화

성하진은 차남현과 성서우의 대화가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아직 하교 전이었는데, 성희수한테서 연락이 왔다. 스워트가 직접 학교로 왔다. 집에 돌아오니 성희수의 팔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성하진이 굳었다. 경호원 중 한 명이 배신자였다. 성희수를 공격하려던 것을 다른 경호원이 막아냈다. "하진아, 나 S국으로 가야 해." 성희수의 얼굴이 창백했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레슬리가 사고를 당했어." 헬리콥터가 추락해 바다에 떨어졌다. 레슬리는 의식불명 상태였다. 아르트 가문의 권력 싸움이 성하진이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격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성희수가 성하진을 꼭 안았다. "레슬리 법정 상속인이 나야. 가야 해. 내가 여기 있으면 그 사람들이 너한테까지 손을 뻗어. 내가 그쪽으로 가면 저 사람..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14화

식탁에는 음식이 따뜻하게 차려져 있었다. 경호원들이 자리를 비키자 세 사람이 어색하게 둘러앉았다. 밥을 먹는 동안 성하진은 티 나지 않게 차남현을 관찰했다. 아까 전 병원 앞이나 합숙소 앞에서 세우던 차가운 눈빛이나 경계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냥 묵묵히 밥을 먹었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의 접시에 반찬을 덜어주면서. 성하진은 속으로 조용히 안도했다. *됐다. 이 정도면 됐다.* 밥을 씹으면서 머릿속으로 시스템을 불렀다. [임무 대상 차남현 흑화 수치 확인.] [현재 흑화 수치: 40.] 성하진의 입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삐딱하게 올라갔다. --- 식사를 다 먹고 차남현이 군말 없이 빈 그릇들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성하진이 엉거주춤 따라 들어갔다. "이 그릇들 싹 다 이번에 새로 산 거니까 그냥 두고 쓰..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13화

성하진은 차남현이 있는 9반 교실로 향했다. 뒷문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니 차남현이 조용히 앉아 문제를 풀고 있었다. 주변이 왁자지껄해도 그 주변 반경만 다른 세계처럼 고요했다. 성하진은 잠깐 장난기가 일었다. 밖에서 부를 수도 있었는데, 그냥 뒷문으로 들어갔다. 9반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걸 느끼며 차남현 앞자리 의자를 당겨 앉았다. 차남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다. 성하진이 혀를 찼다. 그리고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차남현의 펜이 멈췄다. 고개가 올라왔다. 성하진이 거기 있었다. 볕이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성하진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솜털이 옅은 금빛으로 일었다. 성하진이 눈을 가늘게 휘며 웃고 있었다. 놀라게 한 게 재밌다는 눈빛이었다. 그 눈동자 깊은 곳에 묵녹색 빛이..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12화

그 순간. 옆에서 거대한 체구의 검은 수트 남자가 그림자처럼 나타나더니 고태윤의 어깨를 억센 힘으로 밀쳐내고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성하진 앞을 빈틈없이 막아섰다. 인간 방패 그 자체였다.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굳었다. 성희수가 소란을 눈치채고 그쪽을 향해 빠르게 걸어왔다. "스워트, 무슨 일이에요?" 스워트가 딱딱한 K국어로 보고했다. "이안 도련님께서 불쾌하실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성하진이 얼른 수습했다. "저 괜찮아요. 이쪽은 고태윤 선배라고, 학교 지인이에요." 성희수가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워트, 여긴 안전하니까 너무 날 세우지 않아도 돼요." 스워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고태윤을 경계하며 성하진의 지시만 기다렸다. ..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11화

한태호 부감독이 바로 언성을 높였다. "후반에 더빙 들어가는 씬인데 그냥 피아노 치는 시늉만 잡으면 되는 거잖아. 여기서 NG가 왜 나!" 성서우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사과했다. 주변 배우들이 눈짓을 교환했다. 이 바닥에서 눈치 없는 사람은 없다. 다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봤다. *그깟 대타 동생 영상 하나 봤다고 저렇게 흔들려? 멘탈 참 약하네.* --- 성하진은 자신이 성서우에게 얼마나 목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 서로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아도 그 열등감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걸 알 턱이 없었다. 축제 다음 날은 주말이었다. 성하진은 이른 아침부터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시내의 대형 병원으로 향했다. 차남현 어머니의 수술이 잡힌 날이었다. 온라인에서 '운명 개척자'..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10화

연주가 끝났다. 잠시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가, 김 교사가 붉어진 코를 훌쩍이며 입을 열었다. "됐어, 하진이 네가 무대 서. 선생님 잘 봤어. 진짜 완벽했어." 성하진이 건조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 축제 당일이 됐다. 가식적인 무리 아이들이 평소처럼 단물이나 빼먹을 요량으로 성하진한테 같이 자리 잡으러 가자고 불렀다가, 성하진이 메인 무대에 선다는 걸 그제야 알고 뒤집어졌다. 조시우와 나머지 녀석들이 부랴부랴 대기실로 쳐들어왔다. 성하진이 샴페인 골드빛의 핏이 떨어지는 정장 수트를 입고 있었다. 평소 이마를 덮던 이국적인 옅은 색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반쯤 뒤로 넘겨 선을 드러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녀석들이 그 서늘하고 압도적인 외형에 압도되어 일제히 굳어버렸다. "……야 ..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9화

"나 진짜 이번에 제대로 깨달았어. 아이폰이든 한정판이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나 진짜 너무 유치하고 허영심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아……." 잠깐 침묵이 내려앉더니 남학생 하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입을 열었다. "……뭐,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별다를 게 없지. 너 금수저라는 거 부러워하면서 우리도 있는 척하고, 솔직히 그게 딱히 기분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다른 애가 성하진을 봤다. "하진아, 너도 그런 기분이었지?" 성하진은 잠깐 멈칫하다가 조용히 웃었다. "……그렇지." --- 조시우를 문병하고 나서 병원을 나설 참이었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걷다가 옆 비상계단 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로런 박사님이 국내에 오신 게 워낙 이례적인 일이라서요. 만약 이번 경우가 특별 전담 케이..

[BL] 악역인데 빌런들에게 찍혔다. 8화

성하진이 성서우에게 모함을 당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성서우가 학교에 조퇴계를 내고 드라마 촬영에 들어갔다. 제작팀도 소문을 들었다. 외형은 성하진이 압도적이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부정적인 소문이 붙은 신인을 쓰기엔 부담이 따랐다. 결국 그게 성서우의 진짜 목적이었다. --- 이틀 후. 로런 박사가 국내 의료기관 시찰 일정으로 입국했다. 연결된 병원은 이 도시에 있었다. 성하진이 메시지를 보냈다. [운명 개척자: 로런 박사님 오셨어요. 연락처 드릴까요?] 한참 뒤에 답장이 왔다. [차남현: ……진짜예요?] 성하진은 짧게 답했다. [운명 개척자: 네.]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이 한참 뒤에 왔다. 짧았지만, 차남현이 보내는 메시지치고는 긴 쪽이었다. 성하진은 시스템 창을 열었다. [차..